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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장

(인물) 실리콘 밸리의 사무라이 :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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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그의 이야기에는 성공을 향한 집착과 끈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라클(Oracle)을 창업한 그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회사를 넘어 세계 경제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업으로 키웠고, 이 과정에서 패배를 모르는 경쟁 본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생애와 성공 스토리, 그리고 그가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지를 소개합니다.

1. 고난 속에서 태어난 리더십

1944년 미국 브룽크스에서 태어난 엘리슨입양 사실을 12살에 알게 되면서 인생의 첫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교육과 규칙을 싫어했고, 두 번의 대학 중퇴를 겪으며 반항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그를 미래 지향적인 혁신가로 만들었습니다.

(일본 문화 선호 성향) 20대 때 히피의 영향 때문인지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가 갖고 있는 요트들 중 이름이 일본어인 무사시가 있으며,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 전통 일본식 대저택 별장을 지어 소유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캘리포니아로 떠난 그는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1970년대 CIA의 '오라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데이터베이스 기술의 가능성을 깨달은 그는 친구들인 밥 마이너(Bob Miner)와 에드 오츠(Ed Oates)와 함께 오라클(Oracle)의 전신인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SDL)'를 설립합니다.

2. 오라클의 탄생 : 혁신적인 데이터베이스

오라클의 핵심 아이디어는 당시 IBM이 연구하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기술에서 출발했습니다.

엘리슨은 IBM이 이 기술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한다고 판단하고, 이를 상업화하여 시장에 먼저 출시하겠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IBM이 스스로 믿지 않는 아이디어로 그들을 이길 수 있다."

그의 이 말은 오라클이 탄생한 배경을 상징합니다.

오라클 데이터베이스 2.0이 개발되며 첫 고객으로 CIA를 확보한 오라클은 점차 정부 기관과 대기업으로 고객층을 확대했습니다. 엘리슨은 기술력뿐 아니라 탁월한 영업 전략으로 고객을 설득하며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3. 치열한 경쟁과 위기

오라클의 성공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무리한 판매 전략으로 인해 회사는 곤경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제품을 미리 팔고, 고객과의 계약을 과장한 탓에 재정 문제가 발생하며 파산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슨은 위기를 극복하며 새로운 경영진을 영입하고 조직 문화를 개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출시된 오라클 7은 탁월한 성능을 바탕으로 기업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로써 오라클은 다시금 IT 업계의 강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4. 끊임없는 도전 :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

엘리슨은 빌 게이츠와의 경쟁을 자신의 인생 최대의 도전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에 대해 비판하며, '네트워크 컴퓨터(NC)'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간단하고 저렴한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이 아이디어는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인터넷이 주도하는 시대의 도래를 정확히 예측한 혁신적인 비전이었습니다.

비록 NC는 시장에서 실패했지만,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는 아마존, 이베이, 익스피디아 같은 인터넷 서비스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엘리슨의 통찰력은 미래를 내다보는 데 탁월했으며, 이는 오라클이 기술 업계의 중심에 자리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5. 인수합병을 통한 확장

2000년대 들어 엘리슨은 경쟁사들을 제압하기 위해 대규모 인수합병(M&A) 전략을 펼쳤습니다.

2003년에는 '피플소프트(PeopleSoft)'를 인수하며 ERP 시장에서 SAP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이후에도 수많은 기업을 인수하며 오라클은 소프트웨어 업계의 거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한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은 기술 업계의 트렌드가 되었고, 엘리슨의 비전과 결단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6. 승리에 대한 집착과 끊임없는 도전

엘리슨은 단순한 기업가가 아닌 승리에 집착하는 경쟁자였습니다.

그는 요트 경주인 아메리카스컵에서 우승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투자했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자세로 모든 도전에 임했습니다.

그가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은 종종 논란이 되었지만, 그가 가진 끈기와 집념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공의 열쇠였습니다.

2014년, 대표이사 직책을 사퇴하면서 1선에서 물러났습니다.

2024년 9월 13일 포브스 '9월 집계된 포브스 억만장자 순위'에서 미국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1917억 달러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2516억 달러), 아마존 회장 제프 베조스(2026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슨은 오라클의 주식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입니다.

 

래리 엘리슨의 하와이 리조트

(부자 엘리슨 일화)

1) 2018년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주식을 매입해 비상장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어나자 머스크가 테슬라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머스크를 견제하기 위한 독립 이사 2명을 선임하기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합의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래리 엘리슨이 머스크를 옹호하면서 테슬라 주식 1.6%에 달하는 300만 주를 10억 달러에 사들이고 직접 테슬라 이사로 합류시켰습니다.

2020년 8월 주식 분할로 인해 1,500만 주로 늘어났고 2022년까지 이사직을 맡았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수익률이 10배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3년 6월, 스톡옵션으로 오라클 주식 525만 주를 주당 30.11 달러에 매수한 뒤, 사흘 만에 주당 122 달러에 매각해 5억 달러의 시세 차익을 거두었습니다.

2) 스티브잡스와의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엘리슨의 퇴임 이후 망해가던 시절의 애플을 50억 달러에 통째로 사서 잡스를 CEO로 복귀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을 정도라고. 적대적인 인수를 반대한 잡스의 의사 때문에 해당 계획은 현실화되지 않았으나, 이후 투자를 단행하고 이사로 합류하며 NeXT 인수를 통해 애플의 CEO로 복귀하도록 우회적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7. 엘리슨의 유산 : 기술 업계의 거인

오늘날 오라클은 전 세계 정보 시스템의 중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부, 금융, 온라인 상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라클의 소프트웨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엘리슨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비전 있는 경영자로,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혁신가로서 IT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8. 결론 :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사무라이

래리 엘리슨의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위기와 실패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세상을 바꾸는 기술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으로, 엘리슨은 IT 업계에서 역사적인 인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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