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동안 국내 F&B(식음료) M&A 시장에는 이런 말이 반복됐습니다.
"매물은 많은데, 사겠다는 곳이 없다."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프랜차이즈 규제와 점주 갈등 리스크는 커졌습니다. 재무적 투자자(FI)들은 슬그머니 발을 뺐고, 시장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용한 시장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됩니다.
필리핀 외식업계 1위, 현지에서 '필리핀의 맥도날드'로 불리는 졸리비(Jollibee)가 한국에서 잇달아 딜을 성사시키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컴포즈커피 지분 70%를 약 4,700억 원에 인수했고, 2026년에는 샤브샤브 브랜드 '샤브올데이' 운영사 All Day Fresh를 약 8,700만 달러(약 1,269억 원)에 인수했다고 보도됐습니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한국 브랜드일까요?
1. 정리 : 이건 우연이 아닌 '전략적 운용'이다
두 딜을 나란히 놓으면 패턴이 보입니다.
졸리비는 이미 커피빈, 베트남의 하이랜드커피, 싱가포르 프리미엄 커피 전문점 커먼맨커피로스터 등 다수의 커피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졸리비 스스로도 버거·치킨·커피&차·중국 요리를 네 가지 핵심 사업으로 공식화했습니다.
컴포즈커피 인수는 이 전략의 연장선에서, 가성비 커피 카테고리를 글로벌로 확장하는 퍼즐 조각이었습니다.
졸리비는 이 인수 이후 전체 매출이 약 2% 증가하고, 특히 글로벌 매출이 약 41%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2026년에는 컴포즈커피를 필리핀에 론칭한다는 코멘트가 나왔습니다.
인수는 새로운 복제의 시작입니다.
이어진 샤브올데이 인수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국 법인 'Jolli-K'를 통해 조직적으로 실행되는 이 움직임은, 한국을 K-브랜드 소싱 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적 포지셔닝입니다.
2. 진짜 목적 ① : 왜 필리핀인가 - 숫자가 말하는 커피 시장
졸리비가 한국 커피 브랜드를 사서 가장 먼저 이식하려는 곳이 필리핀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장 자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치 솔루션스(Fitch Solutions) 분석에 따르면, 필리핀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2020년 3.05kg에서 2025년 3.78kg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2024년 기준 6위(아시아 1위)는 한국, 아시아 2위인 일본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필리핀인은 하루 평균 2.25잔의 커피를 마시고, 5년 이상 꾸준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전체의 82.7%입니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커피 애호가인 나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필리핀은 커피를 많이 마시지만, 많이 생산하지는 못합니다.
연간 생산량이 약 6만 톤에 불과해 수요를 자체 충당하지 못하고 수입에 의존합니다. 그리고 소비되는 커피의 약 90%가 인스턴트커피입니다. 한 잔에 85페소(약 2천 원) 수준의 가성비 커피를 선호하는 시장입니다.
컴포즈커피가 왜 딱 맞는 선택인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저렴한 가격, 빠른 점포 확장, 표준화된 운영. 필리핀 커피 시장의 수요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3. 진짜 목적 ② : 동남아 확장 - "브랜드"가 아니라 "운영체계"를 산다
졸리비가 하필 커피와 샤브샤브를 골랐는지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 두 카테고리는 동남아에서 현지화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저가 커피는 원가 구조와 운영이 표준화되기 쉬워 점포 확장 속도가 빠릅니다. 샤브·핫팟은 동남아 소비자에게 이미 친숙한 식문화와 맞닿아 있어 메뉴 거부감이 낮습니다.
여기에 K-팝과 K-드라마로 형성된 K-푸드 호감이 브랜드 론칭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줍니다. 실제로 한류 영향으로 필리핀 내 한국 인스턴트커피 수출도 2023년 40% 성장하며 수출 5 위국으로 올라섰습니다.
다만 졸리비가 진짜 사려는 것은 브랜드만이 아닙니다.
해외에서 브랜드를 복제하려면 메뉴를 베끼는 것으론 부족합니다. 가맹관리 체계, 식자재 공급망, 직원 교육 시스템, 품질 기준이 통째로 이식돼야 합니다. 그래서 졸리비가 인수하는 것은 사실상 운영 체계(Operating System)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4,700억 원이라는 인수 금액이 왜 그 수준인지도 납득이 됩니다.
4. 진짜 목적 ③ : 미국 증시 상장 - "K-브랜드는 내러티브 자산이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졸리비는 국제사업부를 분사해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시점은 늦어도 2027년 말이 언급됩니다.
미국 투자자들에게 어필하려면 이런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필리핀 로컬 체인"이 아니라 다국가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 내수 성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재현 가능한 성장 모델을 가진 기업, 브랜드 몇 개를 가진 게 아니라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운영 구조.
이 맥락에서 K-브랜드는 상장 스토리에 강력한 재료가 됩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검증된 가성비 커피 브랜드를 2,000개 가맹점 규모로 인수해, 1인당 소비량이 일본 수준으로 성장하는 필리핀 시장에 이식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은 미국 투자자에게 훨씬 높은 밸류에이션 멀티플을 정당화해 줍니다.
5. 왜 지금 딜이 가능한가 : 차가운 시장이 만든 기회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F&B 투자 심리가 냉각된 이 시점에, 어떻게 딜이 성사되는 걸까요?
오히려 그래서입니다.
재무적 투자자(FI)들은 트렌드 변화, 점주 권리 강화 흐름, 공정위의 프랜차이즈 규제 강화 등을 이유로 이전보다 낮은 멀티플을 요구합니다. 기대가격과 희망가격이 맞지 않아 딜이 안 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졸리비 같은 전략적 투자자(SI)는 계산법이 다릅니다.
한국 내수 수익만으로 가격을 매기지 않습니다. 동남아 복제 가능성, 미국 상장 스토리 기여도, 공급망 내재화 가치를 모두 더해서 인수 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차가울수록 현금과 전략을 가진 SI에게는 오히려 매수 기회가 열립니다.
6. 우리에게 주는 세 가지 교훈
⑴ '좋은 브랜드'보다 '이식 가능한 운영'이 더 비쌉니다.
해외로 복제하려면 메뉴가 아니라 가맹·교육·물류·품질·데이터 시스템이 표준화돼야 합니다.
이러한 체계가 갖춰진 브랜드가 진짜 매물이고, 진짜 가격을 받습니다.
⑵ 딜은 가격보다 구조가 좌우합니다.
에스크로 설계, 진술·보장 범위, 사후보상 조건, 잔금 타이밍, 가격 합의 이후가 진짜 협상입니다.
특히 프랜차이즈처럼 가맹계약·상표·레시피·점주 관계가 얽힌 업종일수록 딜 구조 설계 역량이 곧 협상력입니다.
⑶ 한국 F&B의 다음 빅딜은 해외 전략이 결정합니다.
국내 소비만 보고 가격을 평가하면 구매자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동남아, 미국, 중동에서의 확장 시나리오가 밸류에이션을 바꾸는 시대입니다. 브랜드 오너라면 이 관점을 먼저 갖춰야 합니다.
7. 결론
졸리비의 K-푸드 쇼핑은 "한국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루 2.25잔의 커피를 마시는 1억 명의 필리핀 시장, 동남아 확장, 그리고 미국 증시 상장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밀어주는 글로벌 스토리 자산을 지금,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확보하는 것입니다.
브랜드의 고향보다, 브랜드가 어디로 향하느냐가 가격을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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